제네시스 G90이 첨단 기술로 무장해 세계 무대를 공략할 때, 일본의 센추리는 역설적으로 '아날로그의 정점'을 찍으며 응수했다. 약 2억 원을 상회하는 이 차는 가성비를 따지는 영역이 아니다. 아무나 소유할 수 없는 상징성과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이 만드는 두터운 장벽, 그 자체가 이 차의 정체성이다.
2024 도요타 센추리 전측면 / 출처=도요타 뉴스룸
1. 렉서스 LS를 넘어선 '천상계' 봉황의 위엄
도요타의 정점은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가 아니라 '센추리'라는 독보적인 이름으로 완성된다. 일왕과 총리의 의전차로 군림해 온 이 모델은 일반적인 양산차의 논리를 거부한다. 전면부의 봉황 엠블럼은 기계가 아닌 장인이 직접 조각하며, 외장 도색에만 7겹을 쌓아 올리는 공정은 공산품보다 예술품에 가깝다. 센추리는 매달 단 30대 수준으로 생산량이 극도로 제한되는데, 이러한 희소성은 중고 시장에서도 가격 논리가 일반 차량과 다르게 움직이는 핵심 이유가 된다.
수작업으로 완성되는 센추리의 봉황 엠블럼 / 출처=도요타 뉴스룸
2. '쇼퍼 드리븐' 본질에 집중한 직선의 미학
신형 센추리는 전장 5,335mm로 제네시스 G90 LWB(5,465mm)보다 짧지만, 시각적인 무게감은 그 이상이다. 유선형의 날렵한 트렌드를 따르는 G90과 달리, 센추리는 지붕과 뒷문이 만나는 C필러를 두껍고 수직으로 세워 뒷좌석 승객의 프라이버시를 극대화했다. 이는 단순히 보기 좋은 디자인이 아니라, '누가 타고 있는가'를 숨기면서도 그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는 의전차의 본질에 충실한 결과물이다. 클래식한 3박스 세단 형태를 유지하며 시대에 타협하지 않는 고집을 보여준다.
클래식한 3박스 세단 형태를 유지한 측면부 / 출처=도요타 뉴스룸
3. 디스플레이 대신 '정적'을 선택한 실내 철학
실내는 최신 전기차들이 벌이는 스크린 경쟁과는 거리가 멀다. 거대한 파노라믹 디스플레이 대신 절제된 8인치 화면을 고수한 이유는 명확하다. 화려한 디스플레이의 빛이 VIP의 온전한 휴식을 방해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가죽 시트 특유의 마찰음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도입된 '100% 울 직물 시트'는 센추리의 상징이다.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인 피로감을 아날로그적 고요함으로 치유하겠다는, 가장 사치스러운 방식의 럭셔리를 구현했다.
가죽보다 사치스러운 가치를 지향하는 울 시트 / 출처=도요타 뉴스룸
4. V8 하이브리드가 선사하는 '구름 위'의 주행
파워트레인은 5.0리터 V8 자연흡기 엔진과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결합해 425마력을 낸다. 수치만 보면 강력한 퍼포먼스를 기대하게 되지만, 모든 세팅은 오직 승차감에 집중되어 있다. 능동형 소음 제어(ANC)와 전자제어 에어 서스펜션은 노면의 모든 굴곡을 지워버리는 데 몰두한다. 속도를 높이기 위한 출력이 아니라, 거대한 덩치가 어떤 상황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하며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위한 여유 출력인 셈이다.
5.0리터 V8 엔진과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결합 / 출처=도요타 뉴스룸
5. G90과 센추리, 기술과 헤리티지의 갈림길
제네시스 G90이 세계 최고 수준의 반자율 주행과 디지털 편의 사양으로 '게임 체인저'가 되었다면, 센추리는 브랜드의 혼과 전통을 지키는 '수호자'의 길을 걷는다. G90은 오너가 직접 운전해도 즐거운 첨단 기술의 집약체지만, 센추리는 철저히 뒷좌석 승객을 위해 모든 가치를 희생한 쇼퍼 드리븐의 극단에 서 있다. 기술적 우위는 G90이 앞설지 모르나, 센추리가 가진 고집스러운 헤리티지는 현대자동차가 앞으로 채워나가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 시사한다.
2024 도요타 센추리 후면부 / 출처=도요타 뉴스룸
💡 카앤이슈 Insight
"기술로 무장한 제네시스가 스마트폰이라면, 도요타 센추리는 정교한 기계식 시계와 같다. 누가 타느냐에 따라 정답은 갈리겠지만, '변하지 않는 가치'에 2억 원을 지불할 VIP는 여전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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